감상/책

[리뷰/책]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땅일단 2023. 5. 20. 21:03

저자 : 라우라 에스카벨

읽은 날짜 : 2019.09.07

 

이 책에 손이 간 가장 큰 이유는 특이한 제목이었다. 구조 또한 특이한 소설인데 각 챕터가 요리법으로 시작하며,  12개의 챕터는 1월에서 12월까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제목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요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읽는 내내 풍부한 요리 과정 묘사가 후각적, 미각적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데 라 가르사가문의 막내딸인 티타는 전통에 따라 결혼을 할 수 없었고 친모에 의해 억압당하며 살아간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는 티타를 만나기 위해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게 되고 티타는 그 후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친언니의 남편인 그와 몰래 사랑을 이어간다.

그녀가 유일하게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어렸을 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부엌이었고, 그 때문인지 그녀가 만든 요리에는 그녀의 감정이 담겨 있다.

일례로 로사우라와 티타가 사랑하는 남자 페드로의 결혼식을 위해 티타가 만든 웨딩 케이크는 쓰디쓴 외로움을 담고 있어, 그 케이크를 먹은 티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 감정에 침식되어 구토를 하였다. 또한 페드로가 선물한 장미 꽃잎으로 만든 메추리 요리는 격렬한 성적 감정을 촉발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묘사인데, 이 책에서도 이런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티타의 요리에서 퍼져 나간 관능적인 장미 향기가 수 킬로미터 거리까지 퍼져나가 연인이 서로 만나는 장면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지쳐 다른 남자와의 사랑도 꿈꾸려 했던 티타는 결국 자신의 첫사랑을 버릴 수 없었고, 어머니와 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비로소 페드로와 함께할 수 있게 된다.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자식인 에스페란사는 로사우라가 살아 있었다면 전통에 따라 티타처럼 결혼을 할 수 없었을 테지만 다행히도 사랑을 이루고, 에스페란사의 결혼식이 끝난 뒤 티타와 페드로는 아무도 없는 농장에서 사랑을 나누는데 너무 고조됐던 탓인지 페드로는 복상사하고, 티타는 꺼져가는 마음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성냥을 하나씩 삼킨다. 이내 티타의 몸에서 강렬한 불꽃이 일어나고, 그들은 그 불꽃에 휩싸이며 농장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이 책은 1989년 발표되었음에도 1910년대의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당연하게도 그 때 당시의 정서가 지금과 맞지 않는 면이 다수 있다. 그 때문에 읽으면서 의아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줄거리만 봐도, 사랑하는 여자와 가까이 있기 위해 그녀의 언니와 결혼을 한 페드로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 로사우라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페드로가 정말로 티타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을 할 게 아니라 가문의 악습에서 벗어나게 도움을 주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티타는 그에게 쉽게 가까이 갈 수 없는 몇 십 년 동안이나 마음고생을 해왔을 것이고 결국은 페드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티타와 반대되는 예시가 바로 그녀의 첫째 언니 헤르트루디스인데, 집을 기어코 벗어나 자신의 인생과 진정한 사랑을 찾는 행동이 그러하다.

그러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 시대에서나 동일한 듯하다. 서로에게 집착하는 티타와 페드로, 남편과 아이가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 두려운 로사우라, 티타를 향한 마음으로 따뜻한 헌신을 보여준 존의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요리라는 소재로 이렇게 섬세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 새로웠고, 주인공이 좋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요리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이 아주 인상 깊었다. 한편으로는 살아생전에 불꽃을 일며 타오를 정도의 감정을 느낀 주인공이 부럽기도 하였다.

내 친척 중에 어딘가로 훌쩍 떠난 언니가 있다. 티타처럼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 억압받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연인 문제를 비롯한 여러 일로 간섭받았던 언니이다. 나는 연락을 끊고 멀리 떠난 언니를 마냥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티타가 헤르트루디스처럼 하루빨리 농장을 떠나 사랑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티타의 감정이 불꽃을 통해 솟구쳐 오른 것은 그렇게나 오랫동안이나 억압받던 감정이 한순간에 터져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헤르트루디스가 농장을 떠나고, 내 친척 언니가 집을 떠난 것처럼 말이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조차 절제함을 강요하는 가정과 사회의 압박이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쩌면 티타가 그렇게 훌륭한 요리들을 할 수 있었던 게 그녀가 느끼는 감정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느끼는 설렘이나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고마움, 또 그 밖의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표출할 수 있는 매개체가 요리였기 때문이다.

여태 남미 문학을 접한 적은 그다지 없다시피 했는데 이 책을 통해 남미 문학 특유의 표현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고 요리와 음식을 통해 사람 간의 사랑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읽는 내내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멕시코의 문화와 먹거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 책 읽고난 뒤 직접 만든 인물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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