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책

[리뷰/책] 타인의 고통

땅일단 2023. 5. 20. 20:52

저자 : 수전 손택

읽은 날짜 : 2019.07.14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전쟁 사진이다. 사진으로써 전쟁의 실상을 알려주고는 있지만 정작 작가는 이러한 잔혹한 대중 매체에 둘러싸인 현대인이 실제로 그들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문과 뉴스에 실린 전쟁 피해자의 사진은 이미 익숙해졌고 흡연율을 줄이기 위해 담뱃갑에 부착된 손상된 신체 사진을 사람들은 이제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점점 진부하고 식상해져 가는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때로는 몇 줄의 글보다, 심지어는 움직이는 영상보다 한 장의 사진이 자극적일 수 있다. 전쟁의 실상을 드러내는 잔혹한 사진들은 여러 사진작가들에 의해 책과 기사에 실려 왔다. 그러나 사진과 글의 큰 차이는 해석의 여지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진들을 보았을 때 그저 불쾌감만을 느낄 수도, 평화를 갈구할 수도, 또는 새로운 전쟁으로 이어지는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책에 있는 희생자들과 전쟁 참전 군인들의 사진들을 보았을 때 나는 너무나도 나와 이질적이라고 생각하여 쉽사리 그 실상이 와 닿지 못했다. 확실히 지금은 전쟁보다는 평화가 보통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작가가 생각하는 현대인의 표본이고 전쟁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은 그리 높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뻔뻔하거나 부적절한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라는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시각적인 자극만을 주는 이미지로 인해 잠깐의 연민을 베푸는 것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러나 확실히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다 전쟁과 기아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끔찍한 현장에 끌리기도 한다. 일상적인 예시를 들자면 나조차도 차에 치인 개의 주검을 그냥 지나치기보다는 몇 번 눈에 담은 경험이 있다. 작가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담은 이미지도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렇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진이 효과적인 도구긴 하지만, 사진 한 장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극히 작은 태동뿐일 수 있다. 앞서 사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었지만 사람들은 보통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이러한 사진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삶의 어디에서나 잔혹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우리의 무의식은 그것들에 점점 더 익숙해져가는 이 상황에, 의식적으로라도 사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윤리에 알맞은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좀 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책에도 명확한 답은 쓰여 있지 않았다. 그저 가장 알맞은 생각은 오로지 전쟁의 희생자들의 머리로만 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예전에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치즘에 빠진 독일 장교인 아버지를 따라 아우슈비츠 교도소로 이사 온 8살짜리 아이 브루노는 그곳에 수감된 죄수복을 입은 유태인 아이와 친해지게 된다.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전쟁의 잘못된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의 결말에서 브루노는 친구의 아버지를 찾아 주기 위해 자신도 죄수복을 입고 몰래 들어가게 되고, 그날 가스실에서 유태인 수감자들과 함께 목숨을 잃고 만다. 절규하는 그의 가족들이 클라이막스를 장식했고 나 또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많은 유태인을 학살했던 브루노의 아버지는 결국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된 셈이다. 또한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심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관객들의 반응이다. 관객들은 많은 유태인들이 죽은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죽어선 안 될 인물이었던 브루노가 죽을 때 더 관심을 가진다는 감독의 언급이 있다. 우리는 분명히 생명에는 경중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을 터이건만,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을 타인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쟁 뒤에 찾아온 평화가 우리에게 준 것은 공감능력의 저하와 안일한 마음가짐, 그리고 잔인한 사진을 이질적이라 느끼게 만드는 힘이다.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타인의 실상을 애써 외면하려하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또는 잔혹한 이미지에 약간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있는 우리는 그러나 의식적으로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을 우리 자신이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날이 왔을 때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을 느낄까. 아직까지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지만 지금까지도 사진으로 마주하는 수많은 타인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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