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책

[리뷰/책] 아Q정전

땅일단 2023. 5. 20. 20:53

저자 : 루쉰

읽은 날짜 : 2019.07.03

 

Q정전은 학교 직업과 윤리과목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책이다. 배운 내용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싶기도 하고, 내 스스로 고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책을 한 번 더 읽어보기로 하였다.

이 책은 1921 12월에 쓰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굉장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글 말미에 쓰인 집필 시기를 보고 이렇게나 이른 시기에 쓰였단 것이 신기했다. 어떤 면에서 진보적이라고 느꼈는가, 그것은 주인공인 아Q를 통해 나타내는 풍자가 너무나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집이 없어 웨이좡 마을의 한 사당 안에 들어가 사는 아Q는 가족조차 없으며, 작가에 의하면 이름의 ‘Q’라는 문자 대신 들어갔어야 할 한자를 아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날품팔이를 하며 겨우 살아가는 그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태도를 보이는 데다 정신승리법의 일환으로 언제나 자만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Q를 그저 한심한 사람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당시 중국인들이나 중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가 가졌던 문제점을 거의 총망라하다시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이 작품 내적으로는 입체적인 인물상을 만들고 외적으로는 시대를 풍자하는 효과를 보인다고 분석해 보았다.

Q는 작중 자신보다 강한 건달들에게 여러 번 얻어맞는다.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떠난 자리에서 아Q는 활짝 웃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아들한테 맞은 꼴이군.’

Q의 정신승리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강대국들에게 여기저기 치이는 상황에서,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자문화 중심주의는 아Q의 이러한 정신승리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이런 정신승리법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을 깨닫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꾸자 하는 마음가짐이었을까?

그런 그는 작중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맨 처음 혁명이나 혁명당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여 혐오했던 그는 전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는 자신도 혁명에 동참하고자 한다. 혁명이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시점에서 자존심과 정신승리법을 버린 아Q였지만 정작 그 나름대로의 혁명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고, 심지어 혁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처형장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목숨을 잃는다.

여기서 민족 계몽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혁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아Q, 누명을 쓴 채 끌려간 관청에서 글을 읽을 줄 몰라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아Q. 그리고 죽는 순간 여실히 보여준 그의 노예근성, Q가 죽은 이유를 모른 채 그저나쁜 인간이라 총살을 당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웨이좡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배우는 것은 말 그대로 지식이 늘어나는 활동이지만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깨우치는 일이기도 하다. 처형장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은 아Q 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충분히 계몽되어, 비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을 그냥 구경거리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Q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을 표현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지금 그는 여태껏 보지 못한, 굶주린 늑대의 눈빛보다 더 무시무시한 눈을 보았다. ...(중략) 그 눈길들이 서로 한패가 된 듯하더니, 어느새 그의 영혼을 물어뜯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혁명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며, 그것이 자신들에게 어떤 변화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변화되기 전의 아Q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어느 시대나 통용되는 군중의 모습과도 같다.

또한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자오 나리를 경외하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에게 뺨을 맞은 아Q를 잠시나마 존경하기까지 한다. 얼마나 권력자를 우러러보면 그런 태도까지 보이는지 의문스러워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군중의 노예근성을 엿볼 수 있다.

Q와 웨이좡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비단 중국인들뿐만의 모습은 아니다. 그 당시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풍자이며, 이 작품이 아직까지도 여러 사람들의 구설에 오르는 이유는 전 시대를 아울러 지적하고자 한 문제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괜히노예근성이나, ‘정신승리라는 단어가 아직까지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의 시인 이육사는 <루쉰 추도문>에서 수많은 중국의 아Q들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길을 루쉰에게 배웠다고 일컬은 바 있다. 그만큼 작가인 루쉰은 민족을 계몽하려는 노력을 작품을 통해 펼쳐왔다는 뜻이다. 이 작품에서와 같이 날카롭게 풍자한 것은 자신이 혹시 아Q 같은 자만에 가득 차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사정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하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웨이좡 마을 사람들이 가졌던 굶주린 늑대의 눈빛보다 더 무시무시한 눈을 우리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 잘못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그 의견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지만 너무나 이상적이기에 이 작품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아Q가 있을까? 얼마나 많은 웨이좡 마을 사람들이 있을까? 교육을 통해 무지를 타파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늘어나고 있지만, Q정전은 여전히 사회와 민중을 풍자하는 탁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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