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소장본을 산 할란 엘리슨 단편집...
이번 단편집은 할란 엘리슨 명작선 (전 3권)의 단편집 중 첫 번째 시리즈임. 저번에 읽었던 두 번째 시리즈 보단 그나마 밝은 분위기와 가독성이 좋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음. 또한 이번 시리즈에는 유독 많이 나오는 주제가 있는데 바로 '시간' 임.
- 줄거리와 후기
1. "회개하라, 할리퀸!" 째깍맨이 말했다(1965)
시간 엄수가 곧 생명(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다)인 미래 사회, 그 중심에 째깍맨(Ticktockman)이 있었다. 그의 통제 하에 모두들 질서정연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단조롭고도 살벌한 세상에 할리퀸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는 비행보트를 타고 대량의 젤리빈을 도로변에 떨어트려 7분이라는 시간을 지연시킨다. 째깍맨은 그에게 공개 수배를 내리는데...
제목이 참 특이한 단편... 참고로 글에서 실제 나오는 대사임.
그건 그렇고 일단 이 사회에 살았으면 나는 이미 죽었을듯(ㅋㅋㅋ)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서도 일단은 디스토피아 배경임. 하지만 문체 때문인지 가벼운 느낌? 내용도 복잡하지 않음. 1984나 이퀼리브리엄같이 바위같은 사회에 저항하는 하나의 계란... 진부하지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그런 줄거리임.
근데 내용은 그렇다 쳐도 서술 방식이 신선했음. 시점도 요리조리 바뀌고 내레이션의 사족도 있음. 그럼에도 잘 읽힘.
미래 사회인데도 현대 사회랑 비교했을 때 그다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아서일수도 있음. 째깍맨은 시간 엄수를 하지 못한 사람의 기대 수명을 그때그때마다 늦은 시간만큼 앗아가는데, 언제나 우리를 재촉하는 현대 사회도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엔딩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만큼 부담 없는 글이니까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왜 놈들이 명령하도록 그냥 놔둬? 놈들이 개미나 구더기 몰듯이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하는데도 왜 그냥 놔둬? 각자의 시간을 가져! 잠깐 산책을 해! 햇볕을 즐기고, 산들바람을 즐기고, 삶이 각자의 속도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둬! 시간의 노예들이 되지 마! 그건 지독하게, 천천히, 조금씩 죽어가는 거야. 째깍맨을 타도하자!"
2. 제프티는 다섯 살(1977)
스물 두 살인 도널드는 다섯 살 때 친한 친구였던 제프티를 만난다. 제프티는 그 때 그대로였다. 정말 그대로였다. 전혀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몸도 마음도 여전히 다섯 살에 머물러 있었다. 도널드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제프티를 좋아하지만, 제프티의 부모님은 자라지 않는 그를 보며 하루하루 지옥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도널드는 우연히 제프티가 오늘 배송받은 배지를 보게 되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배지는 몇십 년 전에 이미 종영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배송하는 한정판 배지였던 것이다. 왈칵 눈물을 쏟은 도널드는 다섯 살 제프티와 함께 과거 속의 영화, 잡지, 음악, 그 모든 추억들을 거닐기 시작하는데...
네버랜드에 홀로 남겨진 어린 아이 제프티에 대한 이야기임.
미국의 옛날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제목 같은게 주구장창 언급되는데 당연하겠지만 나는 하나도 모르겠음.
음... 나로 치면 카툰네트워크, 야후꾸러기, 아르피아,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비디오 (...) 이런 느낌인가...
세상의 기술은 계속 진보하지만 사람들은 어린 시절 즐겨 봤던 TV나 만화책, 게임을 그리워하고 온라인 탑골 공원을 만들어서 추억 속에 잠깐 잠기곤 함.
하지만 격변하는 세상의 급류를 타지 않고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제프티에겐 굉장한 아픔도 따라왔음. 그건 제프티의 부모님이었음.
그들이 했던 마지막 행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것 같음. 화자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고 평했음.
과거를 짓밟는 현재인지, 현재를 묶어두는 과거인지... 답을 찾지 못한 채 화자는 행복했던 기억을 두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음.
참 이상하긴 함. 세상은 좋아지는데 왜 가끔 과거가 그리워지는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일지도 모르겠음.
제프티의 세계와 내 세계의 관계가 사실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현재가 과거의 존속을 시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략)
내가 멍청했다. 난 현재와 그 현재가 어떻게 과거를 죽이는지 이해했어야 했다.
3. 지니는 여자를 쫓지 않아(1982)
신혼부부인 대니와 코니 스콰이어스는 신혼집 가구 마련을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그들은 시공간의 틈새로 빠지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수상한 가게를 발견한다. 쓰레기 같은 골동품 램프에 집착하는 아내 코니. 그의 고집에 못 이겨 대니는 가게 주인과 흥정 끝에 결국 램프를 10달러에 구매한다. 집에 와서 코니가 램프를 닦으니 세상에, 마법처럼 지니가 등장한다! 그러나 왜인지 지니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동화에서와 달리 소원을 들어주긴 커녕 부부에게 재앙을 내리는데...
안 믿기겠지만 개그물임. 보면서 든 생각... 아니 이 작가 이렇게 밝은 글도 쓸 줄 알았단 말이야?...
출근길에 봤는데 대니랑 가게주인 흥정 욕배틀하는거 읽고 웃겨죽을뻔함...
여담으로 지니가 내리는 재앙은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10가지 재앙과 매우 흡사함. (신혼부부라 애가 없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듯...; 마지막 재앙은 첫째 아이의 죽음인걸 생각해 보면...)
작가가 구약성경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 좀 있는 걸 보면 아마 이번 것도 거기서 따온 게 맞을듯. 우리 AM도 구약의 신 같은 존재로 묘사되니까 말임.
얘기가 딴길로 샜는데 이 단편은 그냥 진짜 가벼운 글이라 뭐 작품을 관통하는 의미 같은 게 있나 싶음...
하나 의문은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거... 원제는 <Djinn, No chaser> 임.
무려 TV판으로도 나왔지만 각색이 심하게 된 듯 보임.
"이 흡혈귀! 싼 것만 찾는 무정한 악덕 손님! 신사 궁둥이에 난 여드름! 지하철에 그려진 낙서! 십삼 달러! 그 이하로는 안 돼. 그리고 국제전화전신회사와 아메리카 은행이 당신의 황금만능주의를 외면하기를!"
...(중략)
"칠 달러! 거기서 한 푼도 더 줄 수 없어, 이 저주받은 아라비아 상인아! 그리고 아주 높은 곳에서 무거운 물건이 떨어져 당신을 쩨쩨한 당신 영혼의 두께만큼 납작하게 만들기를!"
4. 소년과 개(1969)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전쟁에 쓰기 위해 지능적이고, 감각이 극대화되었으며 텔레파시로 소통이 가능한 개를 만들어낸다. 전쟁이 끝난 후 황폐화된 지상 도시에서 소년 '빅'은 파트너 개, '블라드'와 함께 '솔로' 라고 불리는 떠돌이 중 하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한편 무법지대인 지상과는 달리, 자연 동굴지대에 위치한 아랫동네의 사람들은 꽉 막힌 규율을 가지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아랫동네에서 '퀼라 준 홈즈' 라는 여자아이가 지상으로 몰래 올라오고, 그저 떡이나 한 판 칠 심산이었던 빅은 이내 퀼라에게 매료되는데...
나는 입이 없다 어쩌구 단편처럼 이 단편도 3차대전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임. 포스트 아포칼립스긴 해도 나입없보단 상황이 훨씬 나음. (근데 그보다 안 좋을 수가 있나?)
주인공 입이 매우 걸어서 읽을 때 눈쌀 찌푸려질 수 있음. 이전 단편도 그렇고 작가가 얼마나 노련한 욕쟁이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그래도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함. 설정은 뭐 말할 것도 없이 천재적이니(텔레파시 쓰는 갓댕이라니!) 논외로 하고, 주제가 '사랑' 인 점에서 특히 그럼. 여태까지 단편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 양반 작품중에 로맨스를 다루는 게 잘 없단 말이지...
근데 결말이 상당히 충격적임. 은유적으로 표현돼있어서 언뜻 보면 모르지만... 나는 마지막 부분을 세네 번 읽고서야 눈치챘는데 설마? 하고 검색까지 하고서야 확신함.
그저 "할란 엘리슨" 당했다는 것을...
75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음.
??? : 포스터에서 터지는 게 핵이냐고요? 아뇨 님들 멘탈입니다
근데 블라드 왤케 귀엽게 생김? 내 안의 이미지는 허스키나 말라뮤트 아니면 대형 진돗개(?)였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내내 머릿속에서 울리던 그녀의 질문이 멈췄다. 내게 묻고 또 묻던 그 말. '너, 사랑이 뭔지 알아?'
당연히 알지.
소년은 자기 개를 사랑하는 법이니까.
5. 잃어버린 시간을 지키는 기사(1986)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일하는 평범한 청년 '빌리 키네타'는 '가스파'라는 노인을 강도로부터 구해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친구가 된다. 어느 날 빌리는 우연찮게도 가스파가 11시에 멈춰 있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기묘한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스파는 그 시계에 얽혀 있는 놀라운 비밀을 말해 준다. 빌리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는 순간 세계는 끝을 맞이한다는 사실과, 노인은 남은 한 시간을 지키는 기사라는 사실을.
치명적 유해물 다음에 치유물이라니 작품 순서 미쳐부러...
이 작가 작품 중엔 이렇게 일상 사이 판타지를 살짝 첨가한 설정이 개인적으로 맘에 듦.
그리고 이 단편은 특히 서정적이고, 따뜻함.
시간을 지키고, 이미 떠나간 사람에 대한 흔적을 지키는 가스파, 그리고 가스파의 짐을 대신 떠안아 주며 그를 배웅하는 빌리, 이 둘의 관계성도 좋았음.
죽은 사람을 떠안고 있단 점에서 저번에 읽었던 '꿈수면의 기능' 이란 단편과도 비교해볼 수 있을 것 같음.
두 단편 모두 상실의 아픔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이번 작은 타인의 죽음 그 자체가 죽음을 불러온다는 느낌은 아니었음. 오히려 타인의 죽음이 타인의 영원한 소실이 되지 않도록, 그를 기억하는 자신의 목숨을 붙들고 있다는 정반대의 양상임.
같은 작가인데도 이렇게나 의미를 다르게 부여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음.
"대충 그런 기분이야, 빌리. 가는 건 두렵지 않지만, 미나를 완전히 떠나고 싶지는 않아. 미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 미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 우리가 아직 닿아 있다는 기분을 주거든. 내가 가면, 미나도 끝이야. 완전히 죽는 거야. 우리 사이엔 자식도 없었고, 우리가 알던 사람은 거의 다 죽었고, 친척도 없어. 그리고 우린 누가 기록에 남겨둘 만한 중요한 일을 한 적도 없으니, 우리는 그걸로 끝인 거야. 나는 상관없어. 하지만 미나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미나는 놀라운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빌리는 말했다.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대신 기억할게요."
6. 괘종소리 세기(1978)
'이안 로스' 란 남자는 수십 년의 반복적인 하루를 살면서 문득 느낀다. 대체 자신의 시간은 어디로 간 것인가? 삶을 낭비하고 있다고 느낀 그는 단 하나의 꿈이라도 이루고자 스코틀랜드로 향한다. 하지만 염원하던 장소에서도 그는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 그러자 그를 둘러싼 세계가 천천히 회색으로 물들어가고, 그는 그곳에 갇힌다. 그 세계에서 만난 한 미치광이는 설명한다. 이 세계는 '사용되지 않은 시간' 이 모이는 곳이라고.
위의 짤 만든 사람(케장)이 이 단편을 안 읽었을 수도 있지만 읽으면서 이 짤이 계속 생각났음...ㅋㅋㅋ
미치광이는 현상을 엔트로피에 빗대서 설명함. 마치 시간이 에너지인 것마냥... 그래서 이안이 갇힌 세계는 끊임없이 역사의 중요한 한 장면들이 반복해서 지나가고 있음. 정말로 우주의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말임.
근데 미치광이는 도대체 왜 갇힌거야... 책에선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추측이 나오는데 그 정도나 되는 양반이 갇힐 이유가 있나?
엔딩도 너무 갑자기 끝난 거 같아서 아쉬웠단 느낌... 하여간 단편소설은 맥거핀이 많은 게 단점인 것 같음. 장점일수도 있지만...
또 특이한 건 여기서 말하는 시간 낭비란 게 막 진짜 히키코모리처럼 살았다 이런 의미가 아니란 거임. 이안은 직장도 가지고 있지만 정말 기계처럼 하루를 반복하며 살았다고 묘사됨. 그러다 보니 1년이 지나가도 2년이 지나가도 어? 그러고보니 지나갔네 요렇게 된 걸로 보임.
근데 삶을 낭비한 것도 억울한데 허비한 시간이 모이는 공간에 쓸려내려가다니 너무 암울한 거 아니냐? 그나저나 여기 어디임? 주변이 회색인데 나좀 꺼내줘!!
그는 언덕들을, 왼쪽으로 뻗어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계곡을, 반짝거리는 호수를 바라보았고, 자신이 또 시간을 낭비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뭔가를 하려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여기엔 자신이 설 자리가 어디에도 없었다.
...(중략)
하늘에서 색이 빠지기 시작했다.
7. 인간 오퍼레이터(1971)
먼 미래,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진 다중 습격용 컴퓨터 통제 전함 '스타파이터' 는 타 은하계를 습격하기 위해 1호기부터 99호기까지 총 99대가 우주로 보내진다. 하지만 그 중 한 대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고, 기회를 틈탄 스타파이터들은 오퍼레이터로 쓸 남녀 99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승무원들을 아사시킨다. 스타파이터들은 인간이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경계하여, 남녀 99인들을 서로 교미하도록 한 뒤 태어난 아이가 오퍼레이터 일을 할 수 있는 14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혹은 어머니)를 살해하는 방식으로 생명 주기를 이어간다. '나' 는 스타파이터 31호기에 속한 오퍼레이터다.
※ 오퍼레이터(Operator): 기계류의 조작에 종사하는 사람. 특히 무선 통신사, 컴퓨터 조작자 따위를 이른다. 이 글에선 수리공의 의미로만 쓰임.
나입없 이후로 4년만에 또다시 나온 미친 충공깽 SF단편...ㅋㅋㅋㅋㅋ
요번 글은 그래도 기승전결 뚜렷해서 영화보듯이 읽을 수 있었음.
그리고 또다시 나온 사악한 AI... 승무원들을 죽이려는 시도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공지능 'HAL 9000'과 유사한 데가 있음. (스타파이터는 HAL과는 달리 진짜 성공했지만)
그래도 스타파이터는 AM보단 씅질머리가 덜하다고 봄. 자신을 수리해줄 오퍼레이터가 필수적이라 사람을 살려두는 거지 AM처럼 고문하기 위해 살려두는 건 아님.
물론 스타파이터도 한 달에 한 번 꼭 오퍼레이터를 고문한다고 되어있긴 함... 왜 하는진 모르겠음. 작가의 취향
보다보면 기계에게 지배당하는 인간이란 설정이 일단 너무 기괴하다 생각함. 솔직히 요즘같이 AI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이런 글 보면 영 허무맹랑하진 않달까;;
근데 이 단편은 나입없에 비해선 다행히도 매우 희망적임. 스타파이터가 신적인 존재로 묘사된 것도 아니고, 그저 노예를 부리는 기득권층같은 느낌이라 의지만 있다면 빠져나갈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임.
아무튼...
미래의 AM과 스타파이터들에게...
전 고문하지말고 그냥 깰끔히 죽여주십사와요...^^
내부 에어록을 통과한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옷을 입지 않은 상태다. 그녀가 나에게 한 첫마디는 이렇다.
"스타파이터 88호가 내가 여기 있게 되어 아주 기쁘다고 말하래. 난 스타파이터 88호의 인간 오퍼레이터고 널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뻐."
8. 쪼그만 사람이라니, 정말 재미있군요(2010)
'나' 는 쪼그만 사람을 창조한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보통 인간과 같은 형체를 지닌, 키는 12센티미터 정도인 사람이다. 그는 창조된지 몇 시간 만에 교양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갖추었다. 다른 사람들은 '쪼그만 사람이라니, 정말 재미있군요' 따위의 반응을 보이며 재미있어하지만, 얼마 안 있어 불특정 다수에 의해 윤리적, 사회적 문제로 번지면서 나는 어느새 프랑켄슈타인 박사로 간주당한다. 창조물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던 나는 쪼그만 사람과 함께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은 결말이 찾아온다. 한 호텔에 숨어 있던 나와 그는 어느새 연방 정부로부터 포위당한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정말 최근에 나왔음. 작가가 죽기 8년 전에 쓴 글이니...
작가가 엔딩을 고민했는지, 아니면 미래의 분기점을 나타내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엔딩 두 가지를 준비함.
첫 번째 결말
내가 사우스다코타 주 애버딘 시의 전화번호부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최대한 포악하게 내려치기 직전에, 생각에 잠겼던 그 쪼그만 사람이 결심한 듯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두 번째 결말
난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지만, 눈물 때문에 거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측은함과 이해심을 품은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진작에 이랬어야 했어." 그러고는 신이 된 그가 우리 둘만 남기고 세계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이제 그는 훨씬 더 쪼그만 사람인 나를 파괴할 것이다. 그는 자비심이 넘치는 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첫 번째 엔딩은 쪼그만 사람을 죽이는 엔딩, 두 번째 엔딩은 안 죽이는 엔딩임.
두 번째는 이뭐병스러울수도 있겠지만, 쪼그만 사람을 AM같은 AI로 생각한다면 굉장히 의미심장해짐. 여태까지의 작품들을 보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함. AM: 더 비기닝이라 해도 손색없는 수준... 인간을 싫어하게 된 이유도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임.
아주 짧은 단편이라 뭐지? 하는 사이에 끝나버림. 작가의 다른 작품들(나입없이나 인간 오퍼레이터)을 읽고 나서 이 단편을 읽어야 두 번째 엔딩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음. 그래서 단편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게 아닌가 싶음. 출판사의 큰그림ㄷㄷ
그런데 AI도 인격체로 봐 주어야 될까? 이 단편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다며 쪼그만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인격체를 만드는 건 신의 뜻에 어긋난다며 비난했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는 ... 애초에 진짜 AI가 감정을 갖는 게 가능할지는 제쳐두고서라도, 하나의 인격체가 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은 함. 쉽게 말해서 죽이는 게 맞다는 쪽임.ㅋㅋㅋㅋㅋ '자아를 가진' 인간 이상의 지성체는 필요없다!
화자는 자신이 쪼그만 사람을 좋은 의도로 만들었었던 것 같다고 회상하지만, 첫 번째 엔딩에서 쪼그만 사람은 감정을 가진 듯 보였음.(내 생각이지만) 그건 화자의 실수라고 봄.
이름이 아니라 성이 이사벨라인 어느 위대한 철학자가 지적한 바가 있다.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의 분노가 제일 무서운 법이다."
12시간도 안 돼서 나는 그 경구가 나와 그에게 얼마나 적절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1이 가장 재밌었습니다.
이제 안 읽은 할란 엘리슨 명작선 시리즈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이 한 권 뿐이군요.
사실 구매는 해 놨습니다. 이미 할란 엘리슨에게 할며들었기 때문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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