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 무경
올해 2월에 출간된 미스터리 소설이다.
가연물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다... (애초에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경성에 위치한 가상의 아파트인 '명성아파트' 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목만 봤을 때 명성황후와 관련이 있나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실패!
아무튼 평화롭던 명성아파트에 어느 날 살인사건이 발생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신간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일반적인 탐정 소설과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특징이 있다.
등장인물(용의자 후보들) 소개와 사건 장소 묘사 -> 사건 발생 -> 추리 -> 더 깊은 비밀
사실상 전개는 정통 클리셰의 맛이고,
시대배경과 캐릭터들이 이 작품만의 매력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친절한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캐릭터들의 개성과 말투가 매우 뚜렷해서 헷갈리는 일이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한 화자가 어린 조선인 식모인 만큼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 이해가 쉽다.
본격적인 사건이 전체 분량의 1/3정도 지나서야 나오는데 그 전까진 약간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니 그 1/3동안 작가가 복선을 매우 촘촘하게 깔아놨던 걸 알고서 놀랐다.
주의 깊게 읽었다 생각했는데도 넘겼던 부분이 많았는데,
일례로 영화의 배경을 위해 땅을 파는 장면에서
'아니 원래 영화 찍겠다고 땅까지 파나?'
하다가 그냥 넘어가길래 '아 그 시대는 CG같은게 없으니 그럴 수 있나?'
이런 식으로 나도 같이 납득해버렸는데 그게 복선이었다...
당연히 범인도 전혀 예측 못했다.
상냥한 문체에 가려진 그렇지 못한 수많은 떡밥들... 그 점에서 작가가 추리소설 연출에 능숙해 보였다.
물리 트릭, 즉 하우던잇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며 심플하고,
후던잇과 그에 얽힌 후일담이 후반의 핵심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은 올드한 전개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받았지만,
온갖 장르 변주가 판치는 와중에 오히려 근본 미스터리 소설 같기도 하다.
또한, 경성이 배경인 만큼 시대상황이나 그 시대의 단어도 많이 나온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는 같은 작가의 작품인 '부디 당신이 무사히 타락하기를' 도 읽어보고 싶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입분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인이 입은 기모노가 비대한 몸에 꽉 끼어 몸가짐을 조여서였습니다. 만약 부인이 평소처럼 성질을 부렸다면 몇 번을 더 걷어차였을 테고 뺨도 더 맞았을 겁니다.
입분의 취급과 부인의 체형, 체면치레를 함께 내포하고 있어 좋았던 문장.
"'이 아파트에서는 누가 칼에 찔려 비명을 질러도 밖에서는 못 듣는다'라? 그것참 그럴싸하구나. 유진 양도 퍽 그로한 말을 할 줄 아는군. 써먹을 만한데."
흰 양복을 차려입고 짚으로 짠 세련된 모자와 안경을 쓴 멋쟁이 중년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습니다. 코를 찌르는 짙은 향수 냄새가 풍겼습니다. 명성아파트 202호에 사는 히로타 씨였습니다.
"그게 실수였습니다. 여기 문은 두꺼워서 제대로 닫으면 바깥의 소리가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 아이의 기척을 알아차렸다는 걸 경부가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그 점도 눈여겨봤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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