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책

[리뷰/책]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2024년 제18회

by 저당단 2026. 8. 9.

지은이 : 무경, 홍선주, 장우석, 박건우, 정해연, 김범석

 

황금펜상은 한국추리소설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 유일의 추리/미스터리 문학 상이다.

매년 시상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2024년 작품집이 DDP에 전시되어 있었던게 기억났고,

마침 도서관에 전자책이 비치되어 있어 빌릴 수 있었다.

 

낭패불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 무경

악마의 옆자리에 앉은 한 남자.
악마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옛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1973년 유신 헌법 시기.
경찰로 근무하는 악마, '마 경장', 그의 일터에서도 취조를 가장한 고문에 여념이 없다.
출세에 목말라 있던 신 경장은 취조를 자원하고, 민영수라는 용의자를 처음으로 맡게 된다.

 

최우수상 수상작.

연작 형식을 취했던 '부디 당신이 무사히 타락하기를' 에 수록되어 있던 작품 중 하나.

단편 버전의 낭패불감은 독자가 아닌, 작중 인물이 악마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점이 다르다.

두 가지를 모두 읽은 입장에서, 어느 것 하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 없이 둘다 매력적이었다.

무사타락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아쉬운 점(우연에 기댄 서사)을 제외하면 흠 잡을 것 없이 좋았다.

 

다만, 이 소설이 미스터리 장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무사타락의 네 작품 중에서도 미스터리 요소가 가장 적은 단편이라 생각했어서 의외였다.

물론 최근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경계가 관대해지는 추세이고,

황금펜상도 2024년 들어 추리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진 않다.

"이거 보세요, 어떻게 사람이 타락하는 걸 보며 재미있다고 하는 겁니까?"
"재미있고말고요. 옆에서 한두 마디 던질 뿐인데 그걸 들은 인간은 스스로 남을 파멸시키고 자신을 타락시키더란 말입니다. 누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때 그건 총의 잘못입니까, 그걸 쏜 인간의 잘못입니까?"

궤변이다. 하지만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취기가 말문을 막고 말았다.
"당신은 이미 둘 중 뭐가 진실인지 알고 있어요. 아까도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요? 나중에라도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면 인간은 분명 그걸 후회할 거라고. 그러니 대답해보세요. 어느 쪽이 진실입니까?"

 

아래부턴 우수상 수상작들.

 

 

회귀 - 홍선주

'오오츠카 카나' 는 애인이자 천재 프로그래머인 '쿠스다 코타로' 의 소스 코드를 훔쳐 팔 계획을 세운다.
이번 일만 잘 풀리면 정말 사랑하는 '오가타 유우' 와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으리라.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던 중, 어느 날 그는 코타로의 작업실에서 눈을 뜬다.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고, 눈앞엔 코타로가 피투성이로 죽어 있다.

 

천재 프로그래머의 죽음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있는 작품.

그러나 짧은 글인데도 전체적으로 허점이 너무나 많아서 독자로서는 몰입이 힘들었다.

 

아래는 글의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된 비평 (더보기 클릭)

더보기

먼저 사건의 진실, 왓던잇과 후던잇은 너무 뻔했다.

글 초반부터 허무맹랑할 정도로 완벽한 밀실을 강조하는데,

그럼 당연히 사건에 제삼자가 없으며 자살한 피해자가 현장을 타살로 보이도록 꾸몄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 점에선 반전이 없었는데, 이 작품에선 그걸 무슨 대단한 반전인 것마냥 서술한다.

 

또한 가장 거슬렸던 부분으로, 경찰이 너무 무능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방어흔이나 혈흔 형태 등 당연히 해야 할 현장 분석도 했다는 언급이 없으며 오로지 용의자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

용의자가 기절했다는 진술을 했음에도 그것에 대한 진위 여부도 조사하지 않는다.

증거인 라이브 영상 분석을 용의자가 지목한 일반인에게 맡기는 것도 이상하다. 심지어 그 일반인이 용의자와 치정으로 얽힌 사이라는 걸 아는데도 말이다. 그 일반인이 수사관의 눈을 피해 증거를 훼손시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건지.

 

서사가 깊었던 것도 아니다.

악인만 등장하는 작품이라도 그들에게 공감이 갈 만한 내용이 조금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놀랍게도 전혀 없다.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꽃뱀 그 자체인 카나,

고작 꽃뱀 한 명을 살인 전과자로 만들고자 자기 목숨을 버린 천재 CEO 코타로,

본인도 코타로를 속이고 몰래 연애했으면서 카나의 탓만 하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 유우.

모든 등장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고, 캐릭터성도 너무 얄팍했다.

 

이건 내가 개발자라서 쓰는 거긴 하지만 프로그래밍적으로도 의아하다.

트릭 중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해킹해서 백도어를 통해 녹화영상을 스트리밍처럼 송출했다는 부분이 있다.

과연 잘 운영되고 있는 외부 플랫폼을 해킹하는 게 쉬울까? 간단한 로컬 서드파티 앱 하나를 만들어서 녹화영상을 스트리밍 형식으로 변환하는 게 쉬울까?

 

그리고 한국인이 쓴 소설임에도 등장인물들은 일본인이고 배경은 일본 사이타마현이라,

작품에 일본의 특정 문화나 시스템을 차용했나 했는데 끝까지 없었다.

그래서 왜 그랬나 싶었는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지인이 일본 추리소설만 읽는데 등장인물이 일본 이름이 아니면 흥미가 생기지 않는대서'...

정말 죄송하지만 작가로서 작품에 대한 프로의식이 있는지도 의문인 수준... 할 말을 잃음.

결론적으로 본격 미스터리라고 보기엔 허술하고, 그렇다고 플롯이 뛰어난 것도 아니므로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진범이 최선과 차선 트릭을 따로 만들었다는 점은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수 초 후에야, 비로소 내 오른손이 뭔가를 움켜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단단한 손잡이에 어딘지 익숙한 촉감의 미끈한 뭔가가 느껴졌다. 이내 풍겨온 비린내에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지만 덜컥 솟은 겁에 판단을 미뤘다.
그런 식으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걸 회귀분석, 영어로는 레그레션이라고 해. 근데 재미있게도 심리학에서도 동일한 영어 단어를 사용하는 '퇴행' 이라는 현상이 있어. 사람이 어떤 일로 충격을 받으면 미성숙한 정신 기능 상태로 되돌아가버리는 거야.

 

 

고양이 탐정 주관식의 분투 - 장우석

고양이 '호두' 를 기르고 있는 집사 '주관식'.
정식 고양이 탐정은 아니지만 그는 고양이를 잃어버린 아파트 입주민들의 의뢰를 받게 된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아마추어 '고양이 탐정' 이 주인공인 코지 미스터리(일상 추리물)이다.

나로서는 앞서 <경성탐정 이상> 의 몇 에피소드로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접해보았다.

그 밖에는 약간 애매하지만 <가연물> 쓰레기 방화범과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푸른 십자가> 도 있는데,

이 소설들은 강력 범죄를 다루고 있지 않더라도 상당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내가 이 작품에 몰입하기 힘들었던 건 코지 미스터리여서가 아니다.

플롯이나 문체도 각자 한몫하지만 고증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가장 치명적인 요소는 탐정이 이웃 여성의 집에 관리실 직원을 사칭해 들어가는 장면이다.

범인이 배달원이나 가스 검침원을 사칭했던 실제 강력 범죄들이 같이 떠올랐다.

주거 침입으로 고소당해도 할 말 없는 수준이다.

 

또한 작중 아파트 방범 카메라(CCTV)를 확인하는 장면이 많은데,

개인정보 문제 때문에 아무리 입주민이라도 경찰 개입이 아닌 이상 CCTV 확인은 어렵다.

해당 사실에 대한 고충이나 부연 설명이 없어 독자에겐 의구심을 준다.

 

다음으로는 플롯인데, 주인공인 주관식에게서 서사적 매력을 그다지 찾지 못했다.

동물 애호가라는 건 알겠는데 왜 동물을 애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납득 가능한 설명이 부족하다 느꼈다.

차라리 주인공을 초등학생 정도의 아동으로 설정했다면,

소설의 아기자기하고 순수한 매력을 더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주인공이 아내까지 있는 성인 남성이라 어정쩡한 느낌이 되어 버렸다.

 

가벼운 일상물이라 어느 정도 관대히 넘어가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아무리 일상물이라도 최소한의 완성도는 신경 썼으면 좋았을 텐데.

아래에서 붉은 인용은 아쉬웠던 부분이며, 회색 인용은 괜찮았던 부분.

"음, 이게 중요한데 만약 계단이나 복도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삼식이를 누가 납치했다면 집에 고양이를 기르지 않던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후략)"

왜 고양이를 납치한 사람이 고양이를 기르지 않던 사람일 가능성이 큰지에 대해 설명이 없다.

 

창문 쪽 끄트머리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눈과 입의 각도로 보아 걸그룹 동영상이 분명했다.

눈과 입의 각도만 보고 걸그룹 동영상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다는 건지?

아무리 엉뚱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해도 너무 불친절한 서술.

 

관식의 신분 보증서를 확인한 여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카드키에 사진이 박혀 있지 않아서일까.

그냥 입술을 깨무는 걸로 매우 과도한 짐작을 하고 있다.

 

관식은 종이컵을 품위 있게 핥으며 침묵 속의 거리를 즐겼다.

모순되는 표현들이 섞여, 작품의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살려줬던 좋았던 문장.

 

어떤 사람은 소, 돼지, 닭은 먹으면서 개고기를 먹지 말자고 하는 건 위선이며 일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창백한 주장이다. 모든 동물이 인간에게 똑같은 무게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건, 자기 자식과 남의 자식을 똑같이 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명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의 생명권을 더 중시하는 게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일리 있어 보이나 토론할 거리가 있는 의견.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는 말도 매우 주관적인 것인데 과연 적절한 주장일까.

하지만 '미스터리는 그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는 서미애 작가의 말처럼,

요즈음 화제가 되는 논쟁을 미스터리에 가지고 오는 시도는 좋았다.

 

 

환상통 - 박건우

병실에서 한 남자가 숨을 쉬지 못하며 괴성을 지른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마치 자신의 팔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마주앉은 의사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본다. 이미 사고로 양팔을 잃은 그를.

 

환상통이라는 증상을 소재로 한 호러 스타일의 짧은 단편.

미스터리 소설 중에서도 호러는 거의 접하지 못했던 터라 신선한 느낌이었다.

 

작가가 문장에 신경을 썼는지 빠르고 자연스럽게 잘 읽혔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모든 인물들의 대사들이 너무 설명적이고 조리있어 문어체에 가깝다는 점이지만,

전문적이고 세련된 메디컬 장르 작품 특유의 분위기와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플롯 역시 군더더기없다. 실제 사고에서 모티프를 따온 점도 좋았고,

결말도 질질 끄는 것 없이 텐션을 적절히 유지하며 끝냈기에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만 딱 한 가지, 중반에 너무 힌트를 친절하게 줘서 진상을 예상 가능했단 점은 살짝 아쉬웠다.

"겨우 진정을 시키고 나니 환자분이 그러셨어요. 딸아이가 죽어가고 있었다고.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딱 한 시간만 더 기다렸으면...' 아마도 구조대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에 따님의 숨이 끊어졌던 것 아닐까요?"

묘한 이야기였다. 물론 아버지가 딸의 죽음을 한탄스러워하며 할 법한 말이긴 했다. 그러나 '견뎠으면'이나 '버텼으면'이었다면 모를까, '기다렸으면'이라는 표현은 어딘가 어색했다.

위의 붉은 부분이 해당 힌트.

이 때문에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의 충격이 적었다.

그냥 뭔가 어색하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으면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미스터리 장르로서도, 호러/메디컬 장르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잠든 사이 느닷없이 두 손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 목을 졸랐다.... 믿기 힘든 이야기 같지만 사실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드물지만 한쪽 손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특이한 신경 질환을 보이는 환자가 보고된 바 있다. 개중에는 한쪽 손이 자기 몸을 공격했다는 사례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치료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환자에겐 그런 일이 불가능했다. 그의 두 팔은 이미 뿌리부터 잘려 나간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실마리가 보인 것은 닷새째가 되던 날 저녁 무렵이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대처가 늦어져 환자가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복부를 압박하고 몇 차례 숨을 거칠게 헐떡이던 그는 이내 온몸이 축 처졌다. 빨갛게 부은 눈두덩을 따라 눈물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원해 - 정해연

택배 회사에서 일하는 가은.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 온 이유는 전 남자친구인 민석의 스토킹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민석은 가은의 새 거주지까지 알아낸 모양.
그 무렵 가은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홍학의 자리> 작가인 정해연이 쓴 작품이다.

택배 회사에 대해 생생하게 잘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실제로 택배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 덕이라고 한다.

 

제목은 '원하다' 라는 뜻으로 추정되며, 가은을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메인 사건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곁다리로 사회적 문제까지 같이 다루는 인상 깊은 단편이었다.

개연성도 적절하고 떡밥 회수도 깔끔해서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도 높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홍학의 자리도 그렇고 이 작가는 표리부동인 인물을 능숙하게 잘 만드는 듯.

그 목소리에는 명백히 힘이 없었다. 보고서를 쓴 것도 기억이 나고 스캔을 한 것까지도 기억이 나지만 프로그램에 업로드한 기억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전액 보상이 안 된다는 말에도 그렇게 대거리를 했던 사람인데 아직 보고서도 올리지 않았다는 걸 알면 어떻게 나올지 분명했다.
...(중략)
"너 요새 정신없는 거 그놈 때문이지?"
그 말을 듣자 가은의 머리에 그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이건 다 그놈 때문이다.

가은이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데 있어서 개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민석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하는 문단.

 

"이런 걸 몰래 찍어서 이상한 소문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가은 씨 주변에."
"사장님."
"가은 씨 일 잘하고 손님들한테도 싹싹해서 마음에 들었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이상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게.... 난 이 지점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이야. 그런 소문 도는 건 한 번으로도 족해."

 

 

 

깊은 산속 풀빌라의 기괴한 살인 - 김범석

화자 '남궁혁' 은 친구인 '근호' 가 소유한 산속 풀빌라에 초대받는다.
절친인 '은철', 결혼을 약속한 커플인 '임준' 과 '연경' 까지 모이게 되는데,
모두 함께 포커를 치던 중 잠깐 자리를 비운 임준이 돌아오지 않는다.
일행은 넓은 풀빌라 안에서 그를 찾아 나서고, 임준은 물이 찬 수영장에서 토막난 시신으로 발견된다.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클리셰의 중편 소설.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형식으로,

웹소설처럼 묘사보다는 대사 위주로 서술되는 오락성이 짙은 소설이었다.

 

요즘은 워낙 통신 기술이나 경찰력이 좋으니,

현대 배경의 클로즈드 서클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뇌절을 해야 하는데

이 소설도 하필 통신이 안 되는 풀빌라에서 폭풍우가 쳐서 차를 끌고 나가지도 못한다는 설정이다.

'퍼즐' 로서의 본격 미스터리를 만들려는 목적상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하고 감안하고 봤다.

<독자에게 도전>
범인은 ㅇㅇㅇ 또는 ㅁㅁㅁ이다. 범인은 둘 중 한 명이며, 공범자는 없다. 범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왜 살인을 저질렀는가?

 

읽으면서 범인이랑 흉기는 어느 정도 예상이랑 들어맞았는데,

그걸로 어떻게 피해자를 죽였는지에 대한 방법은 감이 전혀 안 왔었다.

가장 의외였던 떡밥은 '지하의 온도' 였고,

친구 관계를 이용한 살인은 개인적으로 신선해서 좋았다.

 

아쉬웠던 점은 역시 개연성이었다.

폭풍이 친다고 경찰을 부르기 포기하고 굳이 풀장에서 토막난 시체를 건져낸다거나,

친구를 지하 감옥에 처넣는 행동은 아무리 본격 미스터리라도 조금 비상식의 영역이었다.

그 밖엔 지하 감옥의 문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묘사가 추상적이었던 점.

좀 더 구체적이었다면 범행 방법을 조금이나마 예측했을지도 모르는데 (치졸한 변명)

 

그 밖의 의문점 혹은 개연성 오류 (스포일러라 가림)

더보기

1. 사후 경직이라 해도 죽은 뒤 시간이 꽤나 지난 뒤일 텐데 철문에 손을 딱 붙이고 죽는 게 가능한가?

2. 배은철이 서연경과 둘만 남을 목적이었다면, 굳이 이미 갇혀 있는 김근호를 죽일 필요 없이 남궁혁이 깨어나기 전에 서연경을 차로 납치해 다른 곳으로 도망가면 되는 것 아니었을까?

3. 첫 번째 살인의 우연성이 짙다. 풀빌라의 구조도 모를 배은철이 와이어를 챙긴 이유가 애매하기 때문. 그러나 어떻게든 와이어를 범행 도구로 이용하려고 들고 와서 즉흥적으로 트릭을 계획했다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모리어티급 범죄천재)

글 대부분이 직접 제시법 위주로 단순하고 명확히 서술되어 있다는 건 장르적으로선 좋았으나 작품성 측면에선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호불호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이러나저러나 일단 글 자체가 재미있었고, 마지막까지 '기괴한 살인' 이라는 제목을 잘 살린 채로 끝난 결말도 여운이 남고 마음에 들었다.

 

"상식적으로 도박에서 자꾸 지면 중독에서 해방되어야 하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잃으면 잃을수록 더더욱 매달리게 돼. 종교도 마찬가지고. 아무리 질문해도 답변하지 않는 주님일수록, 신도는 더더욱 간절하게 매달리곤 하잖아? ...(후략)"

 

 

 


내가 이렇게 책을 집중해서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분석적으로 파고들었던 소설집.

분명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다양한 국내 작가들의 미스터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도서관에 있었던 2021년 황금펜상 수상집도 읽을지는 모르겠는데 시간이 나면 읽고 리뷰해보는 걸로...